누구나 갖고 있을 거야 추억
서로 다르겠지 기억
빨간 기타 손에 쥐고 잠 못 잤다는 얘기
우리도 설렜지
어두운 방에서 친구와 듣던 음악
같은 노래지만 각자 다르게 기억하는 추억
그래서 우리의 슬픔은 다르지만 같아
같은 시대 같은 세대 같은 문제를 보며
살던 우리 세대 공집합이던 존재의 갑작스러운 부재
어떤 음악을 이곳에서 들을까 고민했어
모두에게 보냈던 나에게 쓰는 편지
하지만 슬픈 표정 하지 않아
남자로서 삶의 시작은 턱밑 수염이 아니라
꿈틀거리는 야망과 자유를 느끼는 것
햇살 속에서 눈부시게 웃던 그녀 나도 있었지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울다가 끝내는 긴 여행
그러다 골랐어 Love Story

젊은 시절 쉼표와 느낌표 같은 시간을 선물해줘서
고마웠어, 이제 쉬어요 마왕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sac_art/8943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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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6일 부터 9월 15일까지 트위터에 올렸던 소설이다. 하루에 하나씩 올려서 당시에는 몰랐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읽어보니 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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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초극소수의 팔로워만이 관심을 갖을 '초단편 140자 트위터 소설'을 시작한다. 「비자나무에 내리는 비」(홍보글)


1. 몇 년 전 혼자 여행을 할 때 의 일이다. 회사를 그만 둔 나는 새 직장에 가기까지 한 달여간 여유가 있었다. 밀린 잠이나 실컷 자려했지만 몇일 후 더이상 잘 수 없어 여행을 결심했다. 해외도 있겠지만 좀 피곤한 생각에 국내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2.그렇게 결정하니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 어디가도 굶을 걱정없고 아무리 낯설어도 내 나라니까 어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전에 힘들게 배낭여행을할때 '다음에는 돈이 들더라도 쉽게 여행하자'고 했던것이 생각나 고물이지만 차를 가져가기로 했다. -계속


3. 정비소에 가서 차를 맡겼다. "엔진오일 갈 때 됐구요. 미션오일이랑 타이어 좀 봐 주세요. 장거리 여행을 할 꺼거든요" 그리곤 집으로 돌아와 여행갈 채비를 했다. 국내여행 안내서를 펼치고 갈 곳을 고르는데 정비소에서 전화가 왔다.


4. 차를 찾으러 갔다. 엔진오일, 미션오일 그리고 몇가지를 갈았다. "타이밍 벨트는 어때요?" 내가 물었다. "좀 비싸니까 이번 여행만 하시고 이제 보내주세요." 마치 안락사를 권하는 의사같은 표정이다. "네" 나는 인정했다.


5. "어디로 가세요?" 차에 시동을 거는데 정비원이 물었다. 어디로 갈까. 잠깐동안 생각한다. "남해쪽으로 가보려구요" "좋겠네요" 하며 차를 안내한다. 그리고 차에 대고 꾸벅 인사를 한다. 나도 엉성한 자세로 고개를 숙인다. - 계속


6. 집으로 돌아와 미리 챙겨두었던 물건들을 차에 넣고 출발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고속도로에는 차가 별로 없었다. 남쪽으로 갈 수 록 더더욱 차는 없어졌고, 급기야 앞에도 뒤에도 차가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기분이 좋았다.


7. 마치 세상에서 나 혼자만이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차선을 지키지 않고 가운데로도 가고, 이 차선 저 차선 옮기면서 달리기도 했다. 혼자라는 것은 더 이상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생기게 했다. - 계속


8. 해가 들판 끝으로 숨으면서 구름을 빨갛게 적시고 있었다. 그렇게 최후는 화려하게 산란하는 것인가. 오늘은 누구의 목을 잘라 하늘에 바쳤는가. 누구 삶의 최후이길래 저토록 아름답게 산란하는 것인가.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는 다리의 힘이 빠졌다.


9. 한동안 멍하니 하늘을 보았으며, 흰색 차선이 의미없이 차 뒷쪽으로 도망갔다. 곧 어두워졌다. 어느새 나는 목포에 도착했다. 처음 오는 곳이었음으로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들고 길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10. 송호해수욕장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나는 안심하고 쉴 수 있었다. 눈에 띄는 여관에 짐을 풀고,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혼자 여행의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은 바로 네모진 방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이다. - 계속


11. 다음날 나는 늦잠을 잤다. 게으름은 언제나 나와 함께 했다. 느릿 느릿 나는 해남의 땅끝에 다달았다. 끝이라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나는 생각했다. 그곳을 걸으면서 나는 숨이 찼다.


12. 돌아가면 담배 부터 끊겠다는 생각이 땅끝에 오니 새삼스럽다. 나는 알고 있었다. 결심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특히 특별히 사람에 의해 정해진 장소나 시간에서 갖는 결심은 절대로 오래가지 않는다. 나는 지도를 보고 벌교로 향했다.-계속


13. 내가 특별히 벌교를 적은 것은 그곳에서 차를 멈추고 오랫동안 쉬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해의 도로를 서서히 달려볼 생각이었다.


14. 벌교의 너른 뻘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 멀리 기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바람따라 갈대들이 박수를 쳤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나는 여수로 가려다 또다시 바다가 보고 싶어 고흥으로 향했다. -계속


15. 시간은 오후 5시쯤 되었다. 바다까지는 아직 한참 더 가야 하기 때문에 저녁을 먹기 위해 천천히 달렸다. 고흥을 지날 때 쯤 절(寺)을 안내하는 작은 판이 보였다. 잠깐 절에 갔다와서 저녁을 먹겠다는 생각에 우회전을 했다.


16. 멀리 논두렁에 왜가리 가 한마리 보였다. 역시 길에는 아무도 없었고 또 나혼자였다. 커다란 둑이 보였다. 제법 큰 저수지였다. 그제서야 나는 가려는 곳이 읍내에서 꽤 멀다는 것을 알았다. 외길 따라 계속 가니 아주 작은 안내판이 보였다.


17. 승용차 한대가 간신히 올라갈 수 있는 좁은 언덕길이었다. 나는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가파른 언덕이라 차가 힘들어했다. 기어를 LOW 로 변경했고,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긴장해서 인지 몰라도 실내가 더워진다. 창문을 열었다.


18. 다행히 맞은 편에서 아무 차도 오지 않았다. 두대가 지나가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길이었다. 그렇게 한참 올라가니 작은 평지가 나왔다.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19. 차를 세웠다. 그때였다. 갑자기 본넷에서 연기가 났다. '오바히트 구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런데 곧이어 '퍽' 소리와 함께 온 산을 뒤덮을 연기가 쏟구쳤다. 좀 놀랐지만 나는 엔진을 끄고 잠시 앉아있었다.-계속


20. 밖으로 나와 본넷을 열어보니 미쳐 나오지 못했던 연기들이 한순간에 하늘로 날아 올라 온 산을 뒤덮었다. 단단히 오버히트 했구나. 아까 부터 비가 굵어져있었다. 나는 물병 몇개를 들고 절 안으로 들어갔다.


21. 절 안에 들어서자 방금 전 자동차 소리에 익숙해졌던 귀는 모든 것을 잊고 새로운 소리를 적응해 갔다. 바람 따라 잎을 비비는 나무의 소리, 가끔 들리는 새 소리, 알 수 없는 풀벌레 소리. 조용한 비소리.


22. 이러한 소리가 익숙해지자 비로소 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작은 곳이었고, 내가 살던 세상이 없어진 것 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숲 뿐이었다. 한쪽 건물에 여자 스님이 있었다. "저 여기 화장실이 어딘가요?" 내가 물었다.


23. "저 쪽으로 가면 스님들 쓰시는 거 뒤로 있어요." 20대 처럼 보이는 젊은 스님이다. 나는 조금 내려가 화장실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숲에서 볼 일을 보고 돌아왔다. 아까 그 스님이 연신 마루 바닥을 닦고 있는 것이 보였다.


24. 수돗가를 찾아 물병에 물을 담고, 법당을 좀 기웃댔다. 절에는 아무도 없었다. 비소리가 저 멀리에서 더욱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강아지 한마리가 지나갔다. 마치 내가 없다는 것 처럼. -계속


25. 차로 돌아와 라디에이터의 뚜껑을 열었다. 여전히 약간의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담아온 물을 넣으려는데 뚜껑 부위 아래쪽에서 물이 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파열이 되었다. 낭패였다.


26. 이번 여행만 하시고 이제 보내주라는 어제 정비원의 말이 생각났다. 하루종일 달려온 자동차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고, 더 버티지 못한 것에 대해 약간의 실망도 들었다. 핸드폰을 열어 보니 안테나가 죽어있었다.

27. 나는 다시 절 안에 들어갔다. 마루를 닦던 젊은 스님에게 다가갔다. "저 죄송한데 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  "예?" "차가 고장나서 전화를 써야 하는데 핸드폰이 안되서요" "저기 공중전화 있어요"

28. 스님이 가르킨 쪽을 보니 처마밑에 공중 전화가 하나 초라하게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카드 공중 전화였다. "전화 카드가 없는데 어떻게 전화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스님이 어둑한 방안에서 무선 전화기를 가져왔다.


29. 자동차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견인차를 불렀다. 스님에게 이곳 전화번호를 물어 전화번호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스님에게 전화기를 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정비소에서 전화가 오면 좀 바꿔주세요." 스님은 아무말도 없이 전화기를 받는다.


30. 나는 조금 떨어져서 무료하게 숲쪽 어딘가를 바라보며 불편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 아까 나를 지나쳤던 강아지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지야 비맞고 다니면 어떻게 해" 젊은 스님이 말한다. 강아지는 신경쓰지 않고 마루 밑에 엎드린다. 


31. "개 이름이 아지 인가봐요" "네" "여기서 고흥까지는 얼마나 되나요?" "글쎄 한 30리쯤 된다고 들었어요" 스님은 이제 방안을 닦고 있었다. 견인이 10킬로 까지는 무상이라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견인비를 좀 내야할 꺼라 생각이 들었다.

32. 강아지가 왔던 곳에서 이번에는 나이가 좀 들어보이는 여자 스님이 오고 있었다. 스님이 지나가려다 말고 젊은 스님에게 말했다. "어제 추웠지요?" "아니예요" "보일러가 고장나서 지금 고쳤으니까 오늘은 괜찮을꺼예요"

33. 스님이 나를 쳐다 본다. "차가 고장이 났대요" 젊은 스님이 재빨리 말했다. "저런" 하면서 가려다 이번에는 강아지에게 "니는 밥먹었냐" 한다. 강아지는 꼬리를 한번 들었다 놨다 할뿐 이다. "밥은 먹는지 원" 하면서 가던 곳으로 간다.


34. 전화벨 소리가 방 쪽에서 들렸다. 스님이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정비소에서 온 전화였다. 어디인지 묻는다. 나는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을 더듬거리면서 설명했다. 다행히 이곳을 아는 것 같았다.


35. 지금 견인차가 다른 곳에 있으니 언제 갈 수 있을지는 조금 후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방안을 닦는 스님을 흘끗보고 전화기를 그냥 들고 있기로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오늘 견인하기는 틀린 것이 아닌가 생각에 조금 초조해졌다.


36. 아까 지나갔던 스님이 다시 왔고, 방으로 들어갔다. 젊은 스님이 나왔다. "전화기 주세요" 안에 있는 스님이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젊은 스님이 들어갔고, 방문이 닫혔다. 내가 신경쓰이는 듯 했다. 나와 강아지 이렇게 둘이 남았다. -계속


37. 나는 텃마루 끝에 조심히 앉았다. 여기는 비구니들만 있는 곳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강아지를 쳐다보았다. 왠지 배고파 보였다. 나도 배가 고팠다. '밥은 먹는지 원' 스님의 말이 생각났다.


38. 방 안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닫힌 방문을 바라보았다. 젊은 스님이 나와 전화기를 건네준다. 나는 꾸벅 인사했다. 정비소였다. 여기까지 오는데 2시간은 걸리는데 너무 늦어 오늘은 힘들거라며 다른 곳을 불러보라고 했다.

39. 나는 더 이상 전화를 쓸 수 없다는 생각에 내일이라도 괜찮으니 와 달라고 했고, 전화를 끊었다. 한숨이 나왔다. 돌아보니 젊은 스님이 바라보고 있다. "잘 썼습니다. 오늘은 틀렸네요." 나는 애써 태연히 웃어보였다.


40. 스님은 말없이 전화기를 받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부처같은 강아지와 내가 남았다. 돌아가야한다는 초조함을 내려놓으니 몸에 힘이 빠졌다. 배가 더욱 고팠다. 나는 절 앞으로 나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41. 절 앞 공터에 전등이 켜졌다. 담배 연기가 더욱 선명해졌다. 비소리가 점점 커졌다. 조금 외로웠다. 앞이 좀 틔어서 멀리까지 보이면 좋겠지만 그냥 숲만 있었다. 스님의 방에서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안쪽으로 돌아보았다.

 

42. 젊은 스님이 건물 뒷쪽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앞을 보고 조금 멍하니 있다가 일어났다. 그때 스님의 발자국 소리가 낫다. 안쪽을 보니 스님이 강아지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43. 먹을 것 좀 있냐고 물어보고도 싶었지만 환영받을 것 같지 않았다. 스님이 어디로 가려는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차 로 가려고 돌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스님이 문을 지나쳐 가다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인천에서 멀리까지 오셨네요"


44. "비자나무를 보려고 왔어요" 대답을 듣지도 않고 가던 길을 가는 스님의 뒷모습에 말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까 통화하면서 말했던 것 같기도 했다. -계속


45. 차로 돌아왔다. 내일까지 이대로 있어야 한다. 10시가 지나자 멀리서 불이 하나 꺼진다. 스님들이 잠자리에 들었나고 생각했다. 사방은 온전한 어둠이 되었다. 비가 차 앞유리에서 땀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노란색 전등 불빛이 비방울에 굴절되었다.


46. 담배를 피려고 창문을 내렸다. 보이지는 않지만 저 아래에 있을 비자나무 숲에서 비와 바람이 어울려 파도 소리를 내고 있었다. 눈을 감아보았다. 비록 조금 난감했지만 싫지 않은 밤이었다.


47. 비가 더욱 세차게 내리고 바람도 심하게 불었다. 숲이 어둠 속에서 거칠게 흔들렸고 파도 소리가 더욱 커졌다. 나는 조금 겁이 났다. 비소리가 아름다운 건 안전한 곳에서 듣기 때문이고, 바람이 즐거운 건 해(害)가 되지 않을 때라고 생각했다.


48.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산 위에서 거센 급류가 몰아쳐 떠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다시 눈을 떴다, 다시 눈을 감았다. 이렇게 몇번을 반복하면서 나는 서서히 잠이 들었다. 그때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 계속

 

49. 나는 긴장한다. 발소리가 점점 다가 오더니 창문을 두들긴다. 창문을 내리려고 했지만 차열쇠를 돌리지 않아 내려오지 않는다. 나는 황급이 문을 열었다. 젊은 스님이 담요를 차 안으로 밀어 넣는다.


50. "밥은 먹었어요?" 고맙다고 말 할 겨를도 없이 스님이 물었다. 그 물음이 살면서 그토록 고맙게 들리는 것이 처음이었다. "아니오. 하지만 괜찮아요" 젊은 스님이 안가고 계속 서 있다. 나는 조수석에 있는 담요를 뒷 자리로 넘겼다.


51. "먹을 게 없어서 감자를 가져왔어요" 스님이 감자 몇개가 들어있는 그릇을 나에게 보이면서 허리를 숙였다. "고, 고마워요. 비 오는데 저 잠깐" "어서 드세요. 그릇을 가져가야 해요"


52. 스님이 문을 닫으려 했지만 닫히지 않았고, 계속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비가 문 사이로 떨어졌다. 나는 허리를 숙여 문을 세차게 닫았다. 쿵 소리가 났다. "배가 고팠는데 고맙습니다" 나는 어색할까봐 인사를 한번 더 했다. - 계속

 

53. 품위를 지키고 싶었지만 꽤 배가 고팠음으로 아마도 허겁지겁 먹었을 것이다. 감자가 목에 걸려 아까 라디에이터에 넣었던 물을 마셨다. "뭐하는 분이세요" 스님이 물었다. "회사에 다녀요. 인터넷 관련된 일을 합니다. 스님"


54. 젊은데 왜 스님이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그런 물음은 싫어할 것 같았다. "전 아직 스님은 아니예요" 멀리 앞쪽을 보면서 스님이 말했다. 그곳은 전등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마치 스님만이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듯 했다. - 계속


55. "수행 중 이예요" 스님은 한숨과 함께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네, 어떻게 스님이.." 뭐라 물어야 할지 몰라 나는 끝을 흘렸다. "어머니 따라 절에 다녔는데 졸업하고 몸이 안좋아서 절에 있다가 큰 스님이 권하셨어요"


56. "네" 스님이 바라보는 곳을 보았다. "머리도 깍고 했는데 자꾸만 세상 생각이 나네요" "어떤 생각이요" "모르겠어요. 그냥 가슴이 가라앉지 않고 들뜨고 그러네요" 스님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57. 이따금 스님의 말 소리는 비소리에 묻히곤 했지만 그것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두 아이를 키우다가 어머니가 몸이 안좋아지고 자신도 몸이 약해 돈을 못벌게 되어 절에 들어왔다고 했다.


58. 나는 알 수 없었다. 세상의 생각이란 것이 과연 버려지는 것인지, 가슴이 가라앉는 것이 무엇인지.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어둠이 가득한 공간 속에 있을 비자나무 숲으로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불고 있었다.


59. 스님의 말에 약간은 빚진 기분으로 회사를 그만 둔 일과 여행을 하게 된 동기 몇가지를 말했지만 말할 수 록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조금 울적해졌다. "여자 친구 있으세요?" 스님이 약간 앳된 얼굴로 나를 본다. "아니요, 없는데요"


60. 내 손에 마지막 감자가 쥐어져 있었다. 스님이 빈그릇을 들고 차 문을 열고 전등 쪽으로 걸어 간다.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다시 차로 와서 문을 연다. "장성의 백양사도 비자나무가 좋지요" 하고 문을 닫는다.

 

61. 스님이 아까보다 조금은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간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곧 스님이 전등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혹시 또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동안 그곳을 바라보았다. -계속

 

62. 새벽 기운이 나를 깨웠다. 비는 그쳐 있었다. 밤새 비에 젖은 숲이 보였다. 새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담요를 접어 절 안으로 들어가 부처같은 강아지가 있던 텃마루에 담요를 살짝 놓으면서 방안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63. 수돗가에 가서 물을 천천히 마셨다. 어제와 같이 절은 절간처럼 조용했다. 차로 돌아왔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았졌을 무렵 산 아래에서 육중한 엔진음이 들렸다. 견인차가 오고 있었다.


64. 견인차에 자동차를 매달고 가려고 할 때 나이 든 스님이 절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신세 많았습니다. 다른 스님은 어디 가셨나봐요" "새벽에 떠났어요" 스님이 세상을 향해 손을 올렸다 내렸다.


65. 읍내로 돌아와 차를 고쳤다. 어제 들은 파도 소리로 충분해 고흥의 바다는 보지 않기로 했다. 또한 이 여행을 더이상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차 수리가 끝나자 마자 나는 집으로 오는 길에 올랐다.


66.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하루동안 잠을 잤고 여행에서 떠나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년 뒤에 회사 일로 광주에 있는 전시회에 갔다가 우연히 지도에서 백양사를 발견하게 되었고, 젊은 스님의 말이 생각나 그곳을 갔다.


67. 휴일이었음으로 제법 사람이 있었다. 절을 한바퀴 돌고 나와 버스에 올라 맨 뒷자리로 가 창가에 앉았다. 그때 낯익은 여자가 버스에 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도 맨 뒷자리로 와서 비어있는 다른쪽 창가에 앉았다.


68. 버스는 출발했다. 우리는 조용히 버스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와 나는 묵묵히 앞을 보고 있었다. <끝>


69. <에필> 초극소수의 팔로워만이 관심을 갖는 트위터 초단편 소설을 써보았습니다. 짧은 대신 한 트윗에 많은 의미를 넣겠다는 과욕이 생기더군요. 관심가져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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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살면서 가끔 생각해보면
꼭 한 사람이 떠오르곤 한다

헤어지고 잊으려고 하다가
가끔 소식도 찾을 수 있다가
몇년전부터 자취가 없어진 사람

항상 '그때'는 몰랐던 것이 있다
나의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이었다는 걸

살다보면
이렇게 살다보면 가끔 생각나는 사람
나를 비난하던 목소리도
너무 그리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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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나는 한숨이었고...
그의 입술은 파르르 했다

어쩌면 우리는
다리와 도로처럼
위도와 경도만 같을 뿐
높이가 다른 길을
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잠시의 시간은 행복이었다

그는 이제 입을 닫았다
나는 숨을 멈췄고...
그의 입술은 열리지 않았다


<사진 : blumay>

 

 

연을 날렸다. 우연히...

추운 겨울, 기름기 없는 살이 갈라지고 동상이 걸려도 뭐가 좋은지 하루 종일 밖에서 놀러다니던 어린 시절... 딱지치기, 구슬까기, 자치기... 계절따라 주기적으로 하는 놀이 중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연날리기가 있었다. 한번도 날리지 못했지만 얼레도 사고, 창호지로 정성스레 연을 만들고, 혹은 문방구에서 50원짜리 가오리연을 사기도 했다. 정말로 연을 날리고 싶다는 욕심이 커지면 혹시나 싼 것을 사서 일까 싶어 거금 100원을 들여 사기도 했다.

친구와 함께 공터로 나가 손에는 연을 하나씩 쥐어 들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무조건 뛰었다. 누나에게 연을 들게 하고는 실을 적당히 풀면서 바람이 불기를 기다려 '지금이야' 신호에 맞춰 누나는 손을 놓고 그리고 나는 또 뛰었다. 뛰다가 뒤를 돌아보면 연은 땅에 질질 끌리거나 이 벽 저 벽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한번쯤 내 연이 하늘을 날게 될거라는 희망을 품고, 내가 느려서 그런거라 탓하며 조금만 더 빨리 뛰면 될거란 생각으로 자꾸만 뛰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집 옥상 바닥에 앉아 이런저런 수다로 쉬고 있을 때 바람이 제법 세게 불어오는 것을 느끼고 일어나 연을 한얼레 두얼레 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연이란 것은 지겹도록 뛰어야 하고, 그것에 의한 맞바람으로 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옥상같이 좁은 곳에서 연을 날릴 수 있으리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 연이 바람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 벅찬 감격과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친구를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내 연을 봐라. 날기 시작한다. 내 연이 난다. 친구도 덩달아 좋아했다. 내 연이 하늘 위로 바람 따라 유유히 좌우로 움직이면서 멀어졌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급한 마음으로 실을 풀었다. 

연을 날리고 싶다는 희망만큼이나 실이 많이 감겨있어 두툼했던 나의 얼레. 그러나 한번도 그만큼 풀어보지 못한 나의 얼레. 그래서 중간이 끊어져 있으리라곤 까막히 모르고 있었다. 실이 한창 풀려나가는 순간 내 손에 느껴지던 바람의 저항이 멈춰지고 그만 내 연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벅찬 감격과 희열은 그렇게 짧게 끝나 버렸다. 10미터도 채 날지 못한 그 짧은 순간, 그 안타까운 순간, 연을 줏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물이 났다.

2002년 가을, 이제는 창호지에 파란색 빨간색 로봇그림이 있던 50원짜리 연과 나무로 만들어진 얼레는 구경하기 힘들다. 대신 그 자리는 비닐과 플라스틱이 대신하고 있다. 우연히 한강 뚝섬유원지에서 연을 날리게 되었다. 쉽게 연이 날았다. 아니 쉽게 연을 날릴 만큼 노련한 어른이 된 것인지 모른다.

뚝섬유원지에서 팔고 있는 연의 얼레는 어릴적 얼레와는 달리 더 높이 날리고 싶은 욕심을 허락하지 않을 만큼 얇았다.

30분 동안 날고 있는 연을 보면서 어렸을 때 아주 짧은 순간 날려봤던 연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슬픈 것은 실이 다 끝날 때 까지 연을 띄우고, 30분이 넘게 연을 날리면서도 즐겁지 않은 나의 무디어진 감정이다. 그리고 연이 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좋아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이다. 그리고 같이 기뻐해주던 친구의 모습이다.

가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새삼스런 그리움이다.

그리워해야 하는 목록에 하나를 더 추가해 본다.

 

2002.10.19 rushcrow '가을 연날리기'

 


이 글을 쓴지도 벌써 5년... 난 작으마한 진실을 떠올린다.
20여 년 전이나 10여 년 전이나 그리고 1년 전이나
그때는 늘 그립다
내일이 되면 오늘이, 내년이 되면 올해가...
그리움이 되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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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에 올라
- rushcrow.com


아직 익지 않은 가을이지만
장대를 들고 은행나무 위에 선다
작년에는 다른 사람들이 다 가져갔지
조금 이른 것 아니냐는 물음에
아버지는 가을을 재촉하듯 빈 곳에 말한다

여름내 볕을 많이 받음 직한 곳이
제법 굵고 노랗다
장대를 대어본다
후두둑 후두둑
팔 짓을 할 때마다 눈물처럼 은행 떨어진다

장갑을 벗듯 열매를 벗은 나뭇가지는
눈물을 훔친 팔뚝처럼 외롭다
나는 그곳에 숨을 불고
위를 본다. 덜 익은 노란색의 가지와 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질서를 가진다

멀리 환청처럼 들리는
운동장의 공 차이는 소리
늘 옆에 있던 사람을 보낸 후
날씨 좋은 일요일, 가을 초입
나는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

더 올라가 보라는 아버지의 소리로
아래를 보면 낯선 구도의 대지
그곳에 점점이 수놓은
노란색 은행, 아버지의 굽은 허리
나는 웃는다 속으로 그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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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어딘가 오아시스가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별이 아름다운 건 거기에 작은 꽃이 있기 때문이라고..
(어린왕자 중에서..)

죽네 사네 하면서도, 세상 참 좆같다라고 늘 말하면서도
아직까지 이놈의 세상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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