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blumay>
연을 날렸다. 우연히...
추운 겨울, 기름기 없는 살이 갈라지고 동상이 걸려도 뭐가 좋은지 하루 종일 밖에서 놀러다니던 어린 시절... 딱지치기, 구슬까기, 자치기... 계절따라 주기적으로 하는 놀이 중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연날리기가 있었다. 한번도 날리지 못했지만 얼레도 사고, 창호지로 정성스레 연을 만들고, 혹은 문방구에서 50원짜리 가오리연을 사기도 했다. 정말로 연을 날리고 싶다는 욕심이 커지면 혹시나 싼 것을 사서 일까 싶어 거금 100원을 들여 사기도 했다.
친구와 함께 공터로 나가 손에는 연을 하나씩 쥐어 들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무조건 뛰었다. 누나에게 연을 들게 하고는 실을 적당히 풀면서 바람이 불기를 기다려 '지금이야' 신호에 맞춰 누나는 손을 놓고 그리고 나는 또 뛰었다. 뛰다가 뒤를 돌아보면 연은 땅에 질질 끌리거나 이 벽 저 벽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한번쯤 내 연이 하늘을 날게 될거라는 희망을 품고, 내가 느려서 그런거라 탓하며 조금만 더 빨리 뛰면 될거란 생각으로 자꾸만 뛰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집 옥상 바닥에 앉아 이런저런 수다로 쉬고 있을 때 바람이 제법 세게 불어오는 것을 느끼고 일어나 연을 한얼레 두얼레 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연이란 것은 지겹도록 뛰어야 하고, 그것에 의한 맞바람으로 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옥상같이 좁은 곳에서 연을 날릴 수 있으리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 연이 바람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 벅찬 감격과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친구를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내 연을 봐라. 날기 시작한다. 내 연이 난다. 친구도 덩달아 좋아했다. 내 연이 하늘 위로 바람 따라 유유히 좌우로 움직이면서 멀어졌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급한 마음으로 실을 풀었다.
연을 날리고 싶다는 희망만큼이나 실이 많이 감겨있어 두툼했던 나의 얼레. 그러나 한번도 그만큼 풀어보지 못한 나의 얼레. 그래서 중간이 끊어져 있으리라곤 까막히 모르고 있었다. 실이 한창 풀려나가는 순간 내 손에 느껴지던 바람의 저항이 멈춰지고 그만 내 연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벅찬 감격과 희열은 그렇게 짧게 끝나 버렸다. 10미터도 채 날지 못한 그 짧은 순간, 그 안타까운 순간, 연을 줏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물이 났다.
2002년 가을, 이제는 창호지에 파란색 빨간색 로봇그림이 있던 50원짜리 연과 나무로 만들어진 얼레는 구경하기 힘들다. 대신 그 자리는 비닐과 플라스틱이 대신하고 있다. 우연히 한강 뚝섬유원지에서 연을 날리게 되었다. 쉽게 연이 날았다. 아니 쉽게 연을 날릴 만큼 노련한 어른이 된 것인지 모른다.
뚝섬유원지에서 팔고 있는 연의 얼레는 어릴적 얼레와는 달리 더 높이 날리고 싶은 욕심을 허락하지 않을 만큼 얇았다.
30분 동안 날고 있는 연을 보면서 어렸을 때 아주 짧은 순간 날려봤던 연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슬픈 것은 실이 다 끝날 때 까지 연을 띄우고, 30분이 넘게 연을 날리면서도 즐겁지 않은 나의 무디어진 감정이다. 그리고 연이 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좋아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이다. 그리고 같이 기뻐해주던 친구의 모습이다.
가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새삼스런 그리움이다.
그리워해야 하는 목록에 하나를 더 추가해 본다.
2002.10.19 rushcrow '가을 연날리기'
이 글을 쓴지도 벌써 5년... 난 작으마한 진실을 떠올린다.
20여 년 전이나 10여 년 전이나 그리고 1년 전이나
그때는 늘 그립다
내일이 되면 오늘이, 내년이 되면 올해가...
그리움이 되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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