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에서의 황홀한 얼음 행성. 사진 출처: movie.daum.net>

 

역대 최고의 수작, 최고의 걸작, 내 인생 최고의 영화라는 호평을 보면서 아무리 좋게 봐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굳이 안 해도 될 글을 좀 써본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내가 어쩌면 모르는 것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그래비티'를 볼 때 나는 어설프게 동양 철학을 공부하고 있어서 괜히 노자나 불교를 떠올렸는데 어쩌면 난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대입할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써본다. 순전히 그정도는 아니잖아? 라는 입장으로.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두 영화가 떠올랐다. 하나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이고, 다른 하나는 '로스트 인 스페이스'다. 만약 이 두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인터스텔라가 새롭게 느껴지겠지만 이 두 개를 떠올린 나는 조금 김이 샌 상태로 볼 수 밖에 없었다.

 


<SF영화의 바이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사진출처: movie.daum.net>

 

작가 김연수의 최신 산문인 '소설가의 일'에 이런 말이 있다. 귀찮은 친구가 자신이 쓴 소설을 읽어 달라 했을 때 다 읽은 것처럼 말하려면 "네 소설은 개연성이 있지만 핍진성이 없어"라고 말하면 된다고. 그런데 인터스텔라는 개연성도 떨어지고 핍진성도 없다. (핍진성은 사전에는 없으나 문학 등에 사용하는 용어로 거짓을 사실로 믿게 만드는 것 정도로 정의한다.)

이 영화는 많은 SF 영화에 영향을 끼쳤으나 너무나 사색적이라 졸린 눈을 비비며 봐야 하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로스트 인 스페이스'처럼 가볍고 유쾌하고 반전이 흥미 있는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내가 영화 보는 수준이 깊지 않아서 겨우 두 영화만 떠올렸을 뿐. 우주로 떠나 시공간이 뒤틀어지고 미래가 현재로 이어지는 내용은 여러 영화에 나오지 않았을까 의심할 만큼 이제는 조금 진부해진 스토리다. 그렇다면 그 얘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남는데 그래서 개연성과 핍진성이 중요해진다.

 


<우주 탐험 SF 영화의 모든 장르가 짬뽕되서 다소 산만한 스티븐 홉킨스 감독의 '로스트 인 스페이스'(1998)>

 

아무것도 안 하면 되는 영화 (스포 있음)

영화를 떠올려보자. 주인공은 우주로의 관심을 거두고 지구만이 우리의 관심이라는 그래서 엔지니어보다 농부가 필요하고, MRI가 없어 아내는 의료 혜택도 못 받고 죽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다 '유령(알 수 없는 힘)'의 안내로 없어진 줄 알았던 NASA --비밀리에 우주 식민지를 찾고 있는-- 에 간다. 그리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간다. 이때 '유령'은 떠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미 이즈음에서 그 '유령'의 존재는 눈치채게 마련이다. 주인공 아니면 딸이다. 그리고 '유령'은 혼자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유령'은 우주여행을 하도록 하고, 무슨 사고가 있는지 다른 '유령'은 가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그런 게 아니었다. 가게 하는 것도, 가지 말라고 하는 것도 같은 사람이다. 가지 않게 하려면 아무 짓도 안 하면 될 일이다. 더구나 오랫동안 보지 못한 딸을 만나 급하게 건내려는 메시지가 겨우 NASA의 좌표라니.


플랜A인가 플랜B인가? (스포 있음)

'유레카'이후에 과학은 급속히 발전되었나보다. 삭막한 지구를 버리고 인류는 우주정거장에서 산다. 엔지니어보다 농부를 키우려던 인류에게 놀라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인류를 구원할 계획이었던 플랜A와 플랜B는 아무도 거론하지 않는다. 다들 우주전거장에서 행복한 듯 보인다. 주인공은 구조되어 늙어 죽어가는 딸과 재회한다. 그리고 곧 우주선 하나 훔쳐서 누군가에게 달려 간다. 그 누군가는 인류에게 잊혀져 오로지 주인공만 만나러 가야 하는 것인가 보다.


평점이 낮아도 볼 영화

어려서부터 영화를 보면 평점(A~F)을 주곤 하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곰곰이 생각하다 'D'라는 무지막지한 점수를 주었다. 영화에 점수를 주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굳이 등급을 나눈다면 친구에게 '꼭 봐라'이거나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이거나 '보지 마'정도일 것인데, 난 친구에게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을 말해주련다. 뭐 내가 영화를 보는 관점이 그다지 대단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형편없었다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감독이 크리스토퍼 놀란이기 때문에 너무 기대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일 것이다. 3시간 가깝게 영화를 보면서 지루하진 않았으니까.(그런데 그게 화면의 힘이지 이야기의 힘은 아닌 듯) 우주를 탐험하는 영화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랬거나 저랬거나 나는 영등포 스타리움관에서 이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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